아버지의 삶【안상홍님/엘로히스트/하나님의교회】
친정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1년이 되어 갑니다.
시간이라는 것이 손안에 쥐고 있는 듯하지만
한순간도 내 곁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.
2남 2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난 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참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.
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살아오신 세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
생각지도 않은 채 살아왔습니다.
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도 나의 일만 생각하느라
아버지의 삶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.
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, 엄마에게서 언뜻언뜻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.
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
외롭고 고단했을 아버지의 삶이 자꾸만 가슴 저리게 다가옵니다.
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오 형제 중 장남인 아버지는
열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.
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논일, 밭일을 해야 했던 아버지는
아침에 보리밥을 먹고 나가면 끼니도 못 챙기고 계속 쟁기질을 하다
너무 배가 고파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.
읍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는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시다 다른 일을 찾아 서울로
올라오셨지만 연고 없는 도시에서 아버지는 더 힘든 노동일을 하셔야 했습니다.
가끔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 어깨가 딱딱하고 가슴뼈가
유난히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을 느꼈는데, 무거운 돌짐을 지고 다니면서 그 무게로
인해 아버지의 가슴뼈가 튀어 나오고 등도 휘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.
그렇게 병원에 가자고 해도 돈 든다고 한사코 거절하시더니
가족들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따라간 병원에서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.
그리고 한 달 만에 돌아가셨습니다.
서로 해야 할 말도, 용서를 구해야 할 일도 많은데,
모든 후회를 가슴에 남긴 채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습니다.
“육십 넘으면 힘 없어 일 못하니까 멸치에 고추장만 찍어 먹고 일 안하고 살라네.
멸치 머리부터 고추장 찍으면 고추장 많이 찍혀서 아까우니까
멸치 꼬리부터 찍어서 먹을라네.”
생전에 아버지가 웃으며 농담처럼 하신 이야기라고 합니다.
평생 일만 해오신 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싶어
가슴이 메어 옵니다.
고된 일을 하며 아끼고 아껴 모은 돈을 친정에 온 딸에게
선뜻 용돈으로 내어주시던 아버지셨습니다.
그것이 아버지의 묵묵한 사랑 표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.
“쟁기질하다가 배고파서 그렇게 울었다면서 쌀밥 좀 더 먹고 가지.”
아버지의 옛 이야기를 하시며 엄마는 한탄하십니다.
당신이 아닌 가족을 위한 삶을 살다 가신 아버지.
그 내려앉은 가슴과 굽어진 어깨를, 가슴 시린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.
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.
아버지, 사랑하여 주심에 진실로 감사드립니다. 사랑합니다.
우리의 죄를 대신해 모진 고난과 희생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걸어가주시는 가운데 구원의 길 열어주신 안상홍님께 무한감사 드립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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